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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 자본에 굴복한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자유게시판

 
입력 04/26
ㆍ조회: 38      
양키 자본에 굴복한 아르헨티나



1990년대 아르헨티나가 도입한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 제도는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외환을 보유할 필요가 없는 제도다. 외환 보유액 대신에 금리를 환율 안정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중앙은행은 외환 수급에 맞춰 환율 등락을 조정할 필요가 없고, 대신에 환율을 달러에 고정시키고 금리를 자율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자국 통화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키고 금리 자율변동에 의해 자국 통화 및 달러 유통을 제어한다. 그러나 정부가 통화를 방어하는 과정에 금리 폭등, 금융시스템 와해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통화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려 하다가 IMF의 미움을 사 경제 악화의 길을 자초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는 페소화와 달러화의 환율을 법으로 정해놓고, 달러나 금이 확보될 경우에 한해 그만큼 페소화를 찍도록 했다. 중앙은행의 화폐발행권을 법으로 제한했다.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는 이 제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인플레이션을 잡았고, 동시에 1995년 멕시코 위기에 따른 ‘테킬라 효과’를 비껴갈 수 있었다.

1994년 미국이 금리를 두배나 올리자 라틴아메리카에 투자됐던 미국의 핫머니들이 대거 미국으로 빨려 들어갔다. 멕시코에서는 페소화가 폭락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모두 통화 위기에 직면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1995년초 페소화 가치를 50% 이상 절하했지만 환율을 달러에 고정시켜 운영했던 아르헨티나는 금리 인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1995년 멕시코의 GDP는 전년대비 31.8%나 감소한 반면, 그해 아르헨티나의 GDP는 1% 감소에 그쳤다. 그후 아르헨티나는 완만한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멕시코 경제는 회복된 1997년에도 위기전인 94년의 수준에 못 미쳤다. 아르헨티나는 2%의 인플레이션 율을 달성한 반면, 멕시코는 페소화 폭락에 따라 수입 물가가 상승, 50%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옹호론자들은 동시에 외환위기를 겪은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를 비교하면서, 이 제도를 도입한 아르헨티나가 위기를 쉽게 극복했다고 주장했다. 주창자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스티브 행크(Steve Hanke) 교수다. 아르헨티나는 1991년 행크 교수의 권고로 이 제도를 채택했고, 홍콩은 이미 1983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경제 개혁은 미국화
메넴 정권은 경제가 안정되고 있는 가운데 1995년에 이른바 테킬라 파동에 휩쓸려,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때 메넴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대외개방과 개혁을 한층 가속화시키는 것이었다. 카발로 장관은 아예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거시 경제정책을 맡기다시피 했다.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아르헨티나만은 흔들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카발로의 일화는 월가에 유명한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다.

멕시코 페소화가 폭락한지 열흘후 카발로 장관은 뉴욕 월가를 찾았다. 그는 월가의 투자자들을 만나 어떻게 하면 아르헨티나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묻고 그들의 조언을 구했다. 그는 월가의 투자자들의 조언대로 정책을 집행했다. 그리고 한달 후 뉴욕을 찾아온 카발로 장관은 월가의 조언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했음을 밝히며, 아르헨티나의 경제 통계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공개했다. 그는 투자를 결정하는 실무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했다.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이 카발로에게 가르쳐준 것은 정부의 긴축정책이었다.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카발로 장관의 요청을 받아들여 흑자재정을 단행하겠다고 약속했다.

1995년 메넴 정부는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수 증대, 정부 보유 주식 매각을 통해 재정 균형을 이루는 내용의 경제 조정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공무원의 봉급을 5~15% 삭감하고, 국영석유회사(YPF) 주식의 매각을 단행했다. 정부가 사용하는 각종 조달물자와 서비스의 지출을 대폭 감축하고, 정부 기구를 대대적으로 줄였다.

재정 적자를 10억 달러 줄이면서 추가로 25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 35억 달러의 예산을 확보한다는 것이 메넴 정부의 목표였다. 그렇다고 95년도 외채 상환금 52억 달러를 흑자 재정에서 상환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95년 4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에 갚기로 한 24억 달러를 1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고, IMF는 메넴 정부의 긴축정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상환 연기를 인정해 주었다.

이같은 조치를 통해 아르헨티나는 1995년 마이너스 4%의 성장에서 96년에는 4%의 성장을 이룩했고, 97년에는 7%이 성장률을 달성했다. 아르헨티나는 아시아 위기도 껴갔고, 중남미 국가 중에서 무난히 결제를 운영하는 나라로 손꼽히게 됐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처럼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MF와 월가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스스로 고통의 길을 선택했다. 월가 투자자들은 카발로가 이쁜 행동을 보임에 따라 아르헨티나에서 돈을 빼지 않았고, 아르헨티나는 멕시코처럼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카발로는 1996년 부패 혐의로 실각했다. 그 스스로 과거 페론주의자들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

페론주의자들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양키자본에 두손을 들자, 월가의 금융황제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가 아르헨티나를 찾아왔다.

소로스는 25%의 지분을 가진 ‘이르사(Irsa)’라는 모기업을 설립하고, 아르헨티나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그는 오피스 빌딩, 쇼핑몰, 고급 호텔, 음식 체인점을 사들였다. 그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갈레리아 파시피코’라는 백화점도 소유하고 있다. 또 이르사의 자회사인 크레수드(Cresud)사는 85만 에이커의 초원을 사서 18만 마리의 소를 방목하고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최대 부동산 소유자로 부상했다.

아르헨티나의 시장 개방은 소로스에게만 적용된 게 아니다. 포드 자동차, 담배회사인 RJR 네이비스코, 네슬레등 서방세계의 내로라는 기업들이 아르헨티나로 들어왔다. 미국 최대 체인점인 월마트는 1997년말 현재 17개의 점포를 만들어 8,000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98년까지는 점포를 두배로 늘렸다. 미국의 시티은행은 주요도시의 아르헨티나 은행들을 흡수하거나 지점을 신설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자유시장 혁명은 마냥 향기로운 것만은 아니다.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던 노동자들이 어느 날 아침에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실업자가 되어야 하고, 미국의 대형 자본은 영세한 현지 기업을 죽여나갔다. 페론주의자들은 그들의 지지기반이 야만적 국제 자본에 의해 파괴되고 있음을 직면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메넴 정권이 제1세계(미국 주도의 서방세계)에 붙어, 아르헨티나는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7년 성장률이 8%에 이르는 등 거시경제 지표는 무척이나 좋아졌지만, 실업률은 14%로 확대됐다. 실업군이 시장 혁명의 방대한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임금인상을 주장하던 노조는 이제 일자리를 달라고 주장했다. 1998년엔 분노한 농민, 근로자, 실업자들이 전국 21곳에서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며칠동안이나 먹을 것을 달라고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카톨릭 성직자들이 중재에 나서 정부와 시위대가 1인당 월 200 달러의 최저임금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시위는 간신히 수습됐다.

아르헨티나의 시장 혁명은 서서히 효과를 보고 있다. 1982년에서 90년 사이에 60억 달러의 적자를 보던 국영석유회사 YPF사는 민영화된 다음해인 1996년에 9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국영기업일 당시 5,000명이던 직원은 지금 50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4,500명의 일자리가 신규 창출될 때까지 아르헨티나의 시장 혁명이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1999년 10월 24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인 페르난도 데 라 루아(Fernando De La Rua)가 당선됨으로써 페론주의 정권은 또다시 패배를 맛보았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도 페론주의자들이 만든 통화위원회 제도와 고정환율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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