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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 배워야 할 것
아르헨티나
자유게시판

 
입력 05/17
ㆍ조회: 43      
아르헨티나에 배워야 할 것



스페인 탐험대가 바다처럼 넓은 라플라타강 하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하얗게 빛나는 모래사장을 보고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강 이름도 나라 이름도 모두 은이란 뜻을 가진 말로 지었다. 강만 바다 같은 것이 아니었다. 25년 전 아르헨티나를 처음 갔을 때 기차 여행을 하였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밤 9시에 출발하여 코르도바까지 근 10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아침에 눈에 비친 차창 밖 기차길 옆 풍경은 지난밤 출발 전에 보았던 소 떼가 한가롭게 끝도 안 보이는 목장에서 풀을 뜯는 그 풍경 그대로였다. 그냥 풀밭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농산품의 원천인 비옥한 땅이다. 아르헨티나 4천300만 인구수보다 더 많은 소를 키우며 밀을 경작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국부의 원천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한때 아주 잘나가는 나라였다. 우리 조상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미 화려한 유럽풍의 건축물이 가득한 남미의 파리였다. 서울 지하철보다 62년이나 앞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으며, 유럽에서 세계대전이 두 차례 이어지는 동안 밀과 소고기로 세계 4~13위의 부자 나라 대열에 들었다. 국제무대에서도 단역이 아니었다. 유엔과 세계은행의 창립 멤버이며 연이은 정치적, 경제적 혼란상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브라질과 멕시코 다음으로 3번째 경제 규모를 자랑했다.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라는 꼴론 극장을 위시해 발레, 연극, 콘서트홀, 갤러리 등 한 도시에만 200여 개가 넘는 중남미 최대의 문화공연 시설을 갖춘 곳이다.

잘나가는 아르헨티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20세기 초중반에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완전고용과 평생 복지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썼다. 민간 기업을 무리하게 국유화한 결과 제조업은 성장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페로니즘의 한 모습이었다. 노동자는 환호하였고, 기둥 밑이 썩는 줄 모르고 모두가 도취되었다. 게다가 99% 백인으로만 이루어진 나라이다 보니 스스로를 라티노가 아니라 유럽인이라고 자만하며 중남미 주변국 사람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아시아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은 훨씬 더 하였다. 마음 따뜻하고 정열적인 라티노와는 전혀 다른 별종이었다. 군부가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고문`살해하여 수만 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일명 ‘더러운 전쟁’을 겪었다. 좌우파가 번갈아 충돌하고 상호 부정하는 식의 정치가 계속되면서 급기야 국가 부도까지 초래하였다. 이웃 칠레는 수십 개 국가와 적시에 FTA를 맺으며 승승장구하는데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나라의 문을 잠그고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그저 축구 하나 정도로 선진국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덩칫값을 못했던 아르헨티나가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지난해 새로 출범한 마크리 정부에 대한 아르헨티나 평론가의 말을 인용한다. 

“마크리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기업 경영도 경험했고 보카 주니어스 축구 구단도 경영해보았다. 전국 24개 주지사를 관저에 초대하여 공평한 업무 추진을 약속하였다. 대통령 개인의 친분과는 전혀 관계없이 각 직책에 가장 능력 있고 성실하고 정직한 인물들을 기용했다. 이전 정권과 달리 대외 문호를 개방하고 협력을 구하는 자세이며 친기업적 성향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거나 노동법 개혁을 하면 반대중적이라고 주장하던 측이나, 소통의 문제로 비판받는 대통령에 맞추는 것이 정체성인 양 우파만 잘났다고 외쳐대다 심판을 받은 측을 포함해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곰곰 씹으며 배워야 할 아르헨티나다. 지난주에는 우리 지역을 방문하여 필자 소속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미체티 여사의 사례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이다. 그녀는 자동차 사고로 25년을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으나 활발한 사회활동을 한 끝에 부통령 자리에 올랐다.

김우중 대구가톨릭대 중남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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