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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레 삽과 트레퐁 터머 호수
캄보디아
자유게시판

 
입력 06/23
ㆍ조회: 229      
톤레 삽과 트레퐁 터머 호수




톤레 삽(Tonle Sap)과 트레퐁 터머(Trapiang Thma) 호수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관광지라는 점에서 결국 하나다. 톤레 삽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6천년 전에 캄보디아의 지층이 가라앉으면서 저절로 생겨난 천연호수다. 여기에 메콩강이 범람하면서 역류해 오른 물이 차올라 우기가 되면 평소보다 열 배나 더 넓은 거대한 바다를 이룬다. 이 바다 같은 호수를 의지하고 몇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호구조사를 할 수 없는 보트피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보트피플 중에는 베트남 난민들이 많이 섞여 있고 이들 중에는 라이따이한들도 있다지만 이제 국적을 가리기는 힘들다.

트레퐁 터머는 이에 비하면 작지만 끝이 안 보이는 농사용 인공담수호다. 물막이 주변 수상가옥들에 캄보디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들이 많아 식도락을 즐기려는 한국관광객이 생기고 있는 추세다. 나의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이들 중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라이따이한의 뿌리를 찾는 일이 포함돼 있다. 베트남전이 끝나던 1975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지 못해 바다로 내몰려 보트피플이 되는데 그중 일부는 메콩강을 따라 톤레 삽으로 흘러들었다. 그래도 운 좋게 큰 배를 탄 사람들은 호주로 건너갔다. 그 뒤 대개는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돌아가봤자 뾰족한 수가 없었던, 이른바 별 볼 일 없었던 노무자 출신 난민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현지생활에 적응하기로 한다. 시드니 소재 코리안 타운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톤레 삽 난민촌의 최초구성원이기도 하다.


◆ 베트남전에 숨겨진 슬픈 스토리들

나는 이제 내 소설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트레퐁 터머와 톤레 삽 호수를 찾아 나선다. 물론 소설이지만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을 둔다. 실제 내가 취재를 다니는 동안 주고받은 카톡의 내용들을 보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사랑을 나눈 참전용사도 있었다. 그가 뿌린 씨앗이 실제 이 톤레 삽 어딘가에 실존한다는 확신에 가까운 메시지도 있었다. 매일 카톡을 날리던 그는 아직도 보트피플로 추정되는 아들에게 그의 전 재산과 여생을 맡기고 싶어 한다. 그의 꿈을 위하여 나는 저들의 ‘뒷담화’를 따라 메콩강을 아래위로 훑고 다녔다. 베트남의 한국군 격전지였던 송카우와 퀴논 사이, 한국군의 머리 위로 고엽제를 뿌려대던 빈탄의 꾸멍 고개를 무시로 들락거렸다. 거기서 맹호용사들이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아리랑이도 만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소설의 반전은 자연의 순리대로 흐르는 메콩강에 있지 않고 살인마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호수 트레퐁 터머에서 멈춘다.

◆ 군부독재의 악령이 깃든 트레퐁 터머 호수

트레퐁 터머는 바탐방 호수와 함께 크메르 루주로 알려진 폴 포트 정권이 만들어낸 농사용 댐으로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국가적 시설이다. 이들은 1975~79년 150만명 이상의 지식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캄푸치아 공산주의자로,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통해 그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진 바 있다. 폴 포트로 알려졌던 저들의 실질적 지도자 쌀 로트는 프랑스 유학까지 한 지성인으로서 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정치에 가담하면서 좌익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데, 그가 추앙한 공산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아니고 마오쩌둥도 아니란다. 그가 ‘민주 캄푸치아’라는 기치를 내걸고 캄보디아에서 펼치고자 했던 정치이념은 ‘내 손으로 내 땅에 내 농사 지어 자급자족하기’였다. 어느 외세의 간섭도 받지 않는, 그야말로 독립된 캄보디아인을 위한 캄보디아인의 자치를 구상했던 자주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만약 그가 잔혹한 학살행위나 반인륜적인 살인 따위를 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국가적 영웅이 되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재평가가 나온다. 왜냐면 그가 만든 인공호수 트레퐁 터머와 바탐방 호수가 그걸 입증하기 때문이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드넓은 이 인공호수는 가뭄에 관계없이 농업용수를 공급하게 만들었고 관계수로는 사철 투망질이 계속될 만큼 고기들을 서식하게 만들어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이 수로는 톤레 삽과도 연결이 된다. 그는 아마 농자천하지대본에 필요한 치수를 일대 혁명과제로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이 역사적 대공사 그 자체는 천년 전 앙코르 왕들이 건설한 인공저수지 ‘동서 바라이(EastWest Baray)’에 비견될 만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의 혁명과업 완수 과정은 틀렸다. 현 정부의 부정부패도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라 한다.
 이동식 그물, 그들에겐 재산목록 1호다.

◆ 시소폰 선교센터에 온 세환이

그에 비해 이웃나라 태국 국왕은 국민들에게 인기 절정이라 한다. 그는 인공우를 만드는 국제 특허권을 가질 정도의 과학자로 인공으로 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농사일을 도와 가히 신적인 존재로 추앙을 받는다. 반면에 현 캄보디아 집권 권력자들은 나무와 땅을 팔아먹는 도적떼들로 지탄받고 있다. 이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의 ‘푸른 나무 가꾸기 모임’이라는 게 있어 벌목에 대한 반대시위를 하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공개적 활동을 중단하고 점점 지하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란다. 요즘 캄보디아 전역에는 총리 사진과 함께 ‘Cambodian People’s Party’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는데 ‘캄보디아인을 위한 캄보디아인의 파티를 벌이자’라는 말일 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쌀 로트의 구호와 비슷한 냄새를 느끼게 한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어떻든 이러한 주변 정세와는 관계없이 참전용사 P는 남성을 부상당해 불구가 되기 전에 유일하게 뿌려둔 혈연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결과 그 핏줄을 고이 간직한 여인이 보트피플의 일원으로 톤레 삽으로 흘러들었다는 정보에 따라 그 뒤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녀가 트레퐁 터머 제방공사에 투입되었다가 처형당해 다릿발 아래 묻혔다는 확인도 한다.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강 목사가 만든 시소폰 선교센터에는 트레퐁 터머 지역교회에서 온 고아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한 학생 이름이 박세환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박영광으로 그곳 전도사였다. 세환이가 어릴 때 무릎에 앉아 들은 바로는 그의 할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할머니가 총살을 당할 때 영광이는 아직 발가벗고 있던 천둥벌거숭이로 풀숲을 뒤지며 개구리를 잡느라 제 어미의 형 집행장에서 멀리 떨어져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게 이웃의 증언이다. 그리고 그 증거물로 할아버지의 군번이 있다. 그러면 박영광이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쳐 전도사가 되었고 또 어떻게 세환이를 낳아 시소폰 선교센터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만들었을까? ‘이게 과연 운명의 장난이냐? 신의 섭리냐?’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대장편의 복합구성이다.

나는 지금 이 세환이를 데리고 여행 중이다.

그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트레퐁 터머를 돌아보고 바탐방까지 왔다. 바탐방은 캄보디아에서 둘째 큰 도시로 과거 프랑스식민지 시대에 농산물 착취의 전진기지로 철로를 건설한 곳이다. 지금은 이 녹슨 선로를 이용한 대나무 기차를 만들어 관광 상품화한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심을 흐르고 있는 바탐방 강에서 엔젤호가 출발한다. 톤레 삽을 경유, 시엠 립으로 가는 관광유람선이다. 여기 양옆으로 캄보디아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이 풍광을 보지 않고서는 캄보디아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수상가옥과 그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는 지금 소설을 건지는 뱃길여행을 하고 있다.

소설가 표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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